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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성냥공장, 추억의 불씨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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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국내 유일의 성냥공장인 성광성냥. 직원들이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성월(67)·황선자(60)·김금자(54)씨. [프리랜서 공정식]
손진국 대표(왼쪽)와 아들 손학익 상무.

경북 의성군에는 60년 역사의 성냥공장이 있다. 지금도 성냥을 생산한다. 성냥은 1회용 라이터에 밀려 1980년대 이후 사양 길로 접어들었지만 사장과 직원들은 ‘사명감’ 하나로 공장을 돌리고 있다.

 지난달 31일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 성광성냥 공장. “철커덕! 철커덕!” 기계음이 요란한 라인에서 성냥개비가 성냥갑에 담기고 있었다. 두꺼운 종이가 기계를 통과하면 성냥갑이 되고 성냥개비가 다시 자동으로 담기는 입갑 공정이다. 아주머니 직원 셋이 기계를 조종하고 성냥개비가 담긴 성냥갑을 옮겨 가지런히 쌓았다.

 성냥은 대규모 장치산업이었다. 아름드리 미루나무는 공장 제재소에서 절단돼 낱개의 성냥개비로 만들어진다. 축목공정이다. 분말 형태의 염소산칼륨은 물에 타 불을 일으키는 약물이 된다. 윤전기는 성냥개비 머리 부분에 약물을 바른다. 성냥 제조의 핵심인 두약공정이다. 성광성냥 손진국(78) 대표는 “이제 성냥 제조 윤전기는 국내에 딱 한 대만 남았다”고 말했다.

 직원 김갑선(53·여)씨는 “많을 때는 직원이 160명이 넘었는데 현재는 9명이 전부”라며 “생산량이 줄어들어 요즘은 모든 직원이 전 공정을 옮겨다니며 일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근속 28년째인 김씨는 “농공단지로 옮겨가면 여기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지만 회사가 어려운데 어떻게 떠날 수 있느냐”며 의리를 과시했다.

 성광성냥은 1954년에 세워졌다. 전성기 때는 의성에만 성냥공장이 세 곳이나 됐다. 성냥산업이 쇠퇴하면서 주주들은 하나둘 떠났고 직원이던 손진국씨는 공장을 사들여 지켜 왔다. 지금은 다시 손씨의 아들 학익(47)씨가 상무를 맡아 아버지와 함께 성광성냥을 꾸려가고 있다.

 회사는 요즘 적자 경영을 하고 있다. 벌써 7∼8년째다. 손 상무는 “그래도 성냥공장을 어떻게든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국가에 성냥공장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성냥공장이 없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불을 만드는 성냥은 에너지의 시작이자 전기가 나갈 경우 필수품입니다. ”

 1회용 라이터와 가스레인지 등의 등장으로 성냥은 이제 식당이나 다방·모텔 등의 홍보물 정도로 쓰임새가 줄어들었다. 광고성냥을 수주하고 배달하는 일을 겸하는 손 상무는 “투자할 여력만 있다면 지금도 판로는 더 확장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지금도 동해안 등 해안가는 습기에 강한 성광성냥의 ‘향로’ 브랜드가 인기라는 것이다. 성광성냥은 올 초 ‘예비적 사회적기업’이 됐다. 마지막까지 남은 직원들에게 최저임금이라도 지급하려는 궁여지책이다.

 ◆향토뿌리기업 지키기=김관용 경북도지사는 30일 성광성냥을 찾아 공장 정문에 ‘경상북도 향토뿌리기업’ 동판을 달아 주었다. 경북도는 30년 이상 지역경제 버팀목 역할을 한 황남빵·고령기와 등 27개소를 이날 ‘경상북도 향토뿌리기업’으로 첫 선정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향토기업 대표들은 “양조장이나 정미소는 어디에나 있지만 하나뿐인 성냥공장만큼은 살리자”고 이구동성으로 건의했다. 경북도 김남일 투자유치본부장은 “향토뿌리기업을 직접 지원하는 것은 어렵지만 대출 금리 우대와 경영컨설팅, 환경 개선 등을 통해 지속발전 방안을 마련하고 ‘명예의 전당’도 꾸밀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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